지금으로부터 정확히 한 달 전, 저녁 10시 30분 엄마가 쓰러졌다는 작은이모의 다급한 전화를 받자마자 우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상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택시에 탑승하여 다시 전화를 걸었다.
뇌출혈이라는 이야기 후
당황스러움과 슬픔이 섞인 작은이모의 횡설수설하는 브리핑.
난 그 당시에 뇌출혈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단지 의식이 없고 수술한다는 소식에 위급함을 느끼며 택시기사를 재촉할 뿐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한 후에야 엄마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계가 많은 침대에 누워서, 엄마를 중심으로 의료진이 바쁘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피곤에 절어 있는 전공의가 내게 다가와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다고 덤덤하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너무 갑작스러워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 상황이 심각하든 슬프든 화가 나든 아니면 미쳐버릴 것 같든 상관없이
병원의 응급의료 시스템은 사람을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솔직히 감정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애초에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료진 입장에선 엄마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있던 내가 방해물이었겠지.
그렇지만 나는 그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전공의가 다시 내게로 와서 검사 결과를 브리핑했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결과지에 쓰여 있는 글씨를 건조하게 읊어댔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어떤 수술을 할 거고, 지금 상태는 어떻다는 둥
엎드려 잤는지 눌린 머리와 퀭한 눈을 하고, 종이에 쓰여 있는 모든 단어를 내게 전달했다.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나는 동공이 열려 있다는 말에 화색이 돌았다.
막힌 것보단 열려 있는 게 좋은 줄 알았기 때문이다.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엄마와 베드는 수술실로 이동하고 있었다.
내가 응급실에 도착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